20세기는 극단의 역사이다

 금사홍

20세기는 극단의 역사이었다. 연장에 서 있는 21세기 초반 역시 급격한 사회 변화와 많은 혼란을 유발시키고 있다. 동서양의 차이는 없어지고 획일화되는 경향은 과학의 발달로 의한 기계문명과 정보의 대량 소비의 결과이다. 이는 서구 사회의 논리 실리주의적 인식론과 물질 중시 사고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생각을 극단적으로 양분하여 어느 한쪽만을 판단의 절대적인 기준을 삼아 기나긴 문화조차 한 순간에 사라지게 하는 현실이다. 특히 자연에 대한 서구적 태도는 정복의 대상으로 자연을 인식하고 인간을 대한다.

본인은 자연주의적 삶 속에서의 사유와 불교적 체험을 전일적(全一的)(1)  방법으로 실제화(實際化)하였다. 회화가 본질적 공간으로 이해되고 작업에 내재된 정신성과 직관적 표현은 진리의 구현이라는 확장을 의도하였다. 전일(全一)이라는 것은 평범한 인간의 일상적인 체험에서 실재에 대한 더 절실한 그림의 표현이다. 정신적인 세계와 물질적인 세계의 진실한 본성을 찾아내는 것이다. 작품에서의 전일적 표현은 작품의 형식과 내용에서 찾을 수 있다.

‌(1) 회화의 전일적(全一的/Holistic) 표현이란? 개체가 전체이고 전체가 개체인 것이며 빛과 어두움 둘 다 포함되는 것이며 앞과 뒤가 아닌 하나의 온전한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Z E N  W O R K 

1 < 선(禪)작업-(zen work) >은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오직 현재의 순간만을 생각하는 회화 작품들에서 전일적(全一的) 표현은 캔버스 전면으로 보여지는 곳과 뒷면인 보여지지 않는 곳을 그리기 작업을 함으로써 보여지는 곳과 보여지지 않는 세계를 초월하려는 초보적인 전일적(全一的) 표현의 시도였다.


M A N D R A  O F  M Y  L I F E

2 < 내 생(生)의 만다라 > 작업은 자연에서 자신의 본질을 찾기 위한 작업이라 앞에서 밝히고 있다. 자신의 본질이라 함은 이 세상 어디에도 있으며 내 마음에 있음을 먼저 깨우친다는 것이다. 이 작업의 전일적 표현은 < 선(線)작업 >과 같이 화면 전체가 이중적 중층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나 이원론을 단일한 세계로 보면서 그것을 색(色)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S O N G  O F  M Y  L I F E

3 생(生)의 노래(song of my life)
생의 노래 - 회화에 있어서는 전일적 표현이 적극적으로 수용되고 있으며 이 작품들은 본인의 삶의 현장인 자연에서 생명의 흐름을 통해 진리를 구현하고자 한다. 형식으로는 물의 흐름을 표현한 각기 다른 이미지가 사유(思維) 상태로 머물러 있다. 내용적으로는 자연을 통해 생명의 흐름을 느끼고 진리를 느낀다. < 붓질회화-(一筆揮之) >는 자연과 합일(合一)하고자 하는 작업이다. 이 작업에서의 전일적 표현은 현장에서의 작업, 단일한 색조의 화면과 재료라 할 것이다.

3-1 구름 , 바람 , 바다  (cloud, wind, see and blue work)

3-2 – 물그림자(shadow on the water)

물은 우리 모두 성물같이 다루었다. 물은 인간만이 아니라 생명이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우주의 선물이다. 물은 작지만 광대하고 무변하며 원만한 덕을 지니고 있어서 이를 보는 사람의 마음에 물의 덕을 통한 지혜를 깃들게 한다. 물은 인연(因緣)에 따라 그대로를 행(行)하여 진다. 그래서 만나는 것이 물그림자이다. 그림자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그림자는 우리 자신의 일부이지만 스스로 거부하거나 억압해온 우리의 내면이다. 우리는 자아와 그림자라는 대극적인 양면을 지니고 있으며 그 사이에서 방황하며 살아간다. 문명화 과정의 이러한 분리과정은 대단히 임의적이고 개인적이다. 선 한가 악 한가 옳은가 그른가에 대한 정확한 기준은 매우 상반된 기준에 의거하고 있는 셈이다. 바른쪽을 드러내고 금지된 부분은 은폐하는 것이 사람이지만 이 양자의 저울에 균형을 맞춤으로써 비로소 우리의 의식은 진정한 성장에 이를 수 있게 된다. 변화하는 작용으로 나타나는 물그림자를 통해 생명의 본질과 존재의 원형을 시각적으로 조형화 한다.


진 경 산 수


4 진경산수(眞景山水)(2) 

생명을 표현해 주는 산수는 다양한 모습에서 생명성의 다체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이치가 있다. 마치 대생명의 이치가 뭇 생명들을 살려내는 것과 같다. 겸재 정선은 천지인(天地人), 즉 땅과 자연, 그리고 그에 깃들인 인간의 조화로운 공존을 묘사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성찰하였다. 진경산수는 우주와 인간, 산수자연과 인간이 공존한다는 선인들의 우주관과 자연관을 토대로 형성 되였다. 자연과의 합일(合一)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으므로 전일적(全一的)표현 회화로는 적격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연의 시각적 느낌보다 촉각적인 느낌, 더 나아가 본인이 느낀 본능적인 인상을 붓질로 옮긴다.

(2) 진경산수(眞景山水) 진경산수화는 성리학의 굴레와 중국풍의 관념 산수에서 벗어나 우리 땅의 현실미를 추구해 한국 회화. 대상의 겉모습만을 묘사한 형사(形似)의 그림이 아니라 대상의 본질을 표현하는 신사(神似)의 그림을 진경이라 한 것이다.


지 각 을  통 한  사 유


5 지각을 통한 사유

진정한 창조적 행위는 온전한 실체를 인식하는 것이지 부분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다. 삶에 관한 단순한 견해로는 찾을 수 없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온전한 경험을 통해서만 찾을 수 있다. 자아의 성찰의 기본인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의 보편적인 답은 '내 안에 답이 있다'이다. 이것은 이 물음의 답은 한가지가 아닌 각기 다른 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데, 보통 사람들에게는 내면을 탐색한다는 말은 그 의미조차 모호하다. 이럴 때 좋은 방법은 참선을 통한 삼매(三昧:잡념을 떠나서 오직 하나의 대상에만 정신을 집중하는 경지)상태에서의 내면의 탐색이라고 생각한다. 그 내면에서 나온 상상은 보이지 않는 마음, 감정, 정서, 영혼을 가시적인 이미지로 탈바꿈하게 만드는 힘이 된다. 그 상상은 나에게 가시적으로 보내주는 메시지이다. 참선을 통한 상상은 비가시적인 염원과 에너지와 진화의 동력이 볼 수 있고 체험할 수 있게 되는 자신을 드러내는 만화경이 된다.

5-1 반가사유상

반가사유상은 명상에 잠긴 싯다르타 태자의 모습에서 비롯한 것으로, 중국으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하나의 도상으로 확립되었다. 중국에서는 초기에 인생의 덧없음을 사유하던 싯다르타 태자상으로 인식되기도 했지만 점차 미륵보살상으로 자리 잡았으며 한국의 삼국시대 반가사유상도 대부분 미륵보살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본인이 생각하는 반가사유상은 가부좌를 막 풀고 아직은 오불관(五佛觀)을 하여서 호흡을 놓지 않고 눈은 감지도 뜨지도 않아서 번뇌에 들지 않으며 손가락은 결인(結印)을 풀고 입으로는 아직 염송(拈頌)을 하고 있는 상태로 느껴지며 삼매(三昧)에서 벗어나기 직전, 밖으로 법신 부처님, 안으로 자성 부처님으로 일체화된 상태를 표현하고자 한다.
회화의 전일적의 표현의 문제는 실존을 바탕으로 나라는 존재의 한계가 무엇인지를 사유하는 것이다. 스스로 ‘나’를 묘사하거나, 설명하거나, 또는 느낄 때마다 마음속에 정신적 경계를 긋는다. 그런 다음 그 경계의 ‘안쪽에’ 있는 모든 것은 ‘나’라고 느낀다. 반면에 그 경계 ‘밖’에 있는 모든 것은 ‘나 아닌 것’으로 느낀다. 즉,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물음의 본질은 ‘당신은 어디에 경계를 설정했는가’라는 의미로 파악할 수 있으며, 인간의 본질과 깨달음의 지평에 관한 가장 정교한 통찰을 제공하고자 한다.





전 일 적  산 수


6 – 전일적 산수(全一的 山水)

회화의 전일적의 표현의 문제는 실존을 바탕으로 나라는 존재의 한계가 무엇인지를 사유하는 것이다. 스스로 ‘나’를 묘사하거나, 설명하거나, 또는 느낄 때마다 마음속에 정신적 경계를 긋는다. 그런 다음 그 경계의 ‘안쪽에’ 있는 모든 것은 ‘나’라고 느낀다. 반면에 그 경계 ‘밖’에 있는 모든 것은 ‘나 아닌 것’으로 느낀다. 즉,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물음의 본질은 ‘당신은 어디에 경계를 설정했는가’라는 의미로 파악할 수 있으며, 인간의 본질과 깨달음의 지평에 관한 가장 정교한 통찰을 제공하고자 한다. 자연을 그리든 아니든 간에 본인에게는 그린다는 창작행위 자체는 자연으로부터 오는 진리에 대한 메시지에 관련되어 지는 부분이다. 본인의 작품이 자연에 대한 단서가 깊이 잠재되어 있고 그것의 발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